공지 및 방명록 by 굔군

1. 이 블로그는 키보드 배틀과 병림픽을 권장하는 블로그입니다.

2. 욕설과 무례한 덧글은 절대 금지입니다. 주인장의 마음에 들지 않는 덧글은 임의로 삭제될 수 있습니다.

3. 이 글은 방명록을 겸합니다. 인사나 개인적으로 하실 말씀이 있으신 분들은 여기에 남기시면 됩니다.

4. 주인장은 하루히빠입니다.




그럼 다음 키배에 관한 전세계 거물들의 주옥 같은 명언들을 가슴 속 깊이 새기면서, 오늘도 더욱 가열찬 키배를...






키배는 병신 올림픽과 같다. 이겨도 넌 병신이다. - 빌 게이츠


성공한 사람이 키워짓 하는 경우는 있어도, 키워짓 한 사람이 성공한 경우는 없다. - 워렌 버핏


승리해도 병신, 패배해도 병신이라면 승리한 병신이 돼라. - 앨빈 토플러










내 블로그 방문자 & 링크 통계 by 굔군

이전 포스팅과 마찬가지로 그냥 연말에 심심해서 해 보는 포스팅.




처음 개설한 9월까지만 해도 이랬던 내 블로그 방문자 통계.






이후 점차 블로깅을 하면서 방문자와 링크 수가 늘어나기 시작.







여기부터는 캡쳐한 날짜를 기록해 놓은 것들.



2011.11.26 - 2,400 Hit





2011.12.08






2011.12.09 - 2,800 Hit





2011.12.10





2011.12.15 - 3,600 Hit






2011.12.17







2011.12.18







2011.12.21 - 3,750 Hit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늘(2011.12.31) 오전에 찍은 3,850 hit






사실은 그 동안 캡쳐해 놓았던 것들 한번에 전부 몰아서 쓰려는 목적도 없지는 않은 포스팅. ㅎㅎㅎ


이글루스의 메이저 블로거 분들에 비하면 아직은 미약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블로그 개설 3개월만에 이만큼 성장한 것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만족한다. 전체 방문자 229명으로부터 시작해서 현재는 3,800을 넘어섰고, 링크해 주신 분들도 14명으로 늘어났다.

뭐, 사실 블로깅을 그렇게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별 내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내년부터는 더욱 활발한 활동으로 더 많은 분들이 내 블로그를 찾으실 수 있도록 분발해야겠다.


아울러 이 황량한 은둔자의 블로그를 찾아주시고 링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린다.

2011년 내 이글루 결산 by 굔군

블로그 개설한 지 얼마 안 된 입장에서 결산이라고 할 것도 없지만... 그냥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궁금해서 결산이나 한번 해 봤음. ㅇㅅㅇ




2011 내 이글루 결산

1년동안 작성한 굔군님의 결산내역입니다. 이글루에 포스팅하여 공유해보세요.
본문이 500px 이하인 스킨은 지원하지 않아 포스트가 잘려보일 수 있습니다.
결산기간 : 2011년 12월 26일~ 201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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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2010  2011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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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1년동안 작성한 글

200자 원고지 기준으로 320장 분량이며, 원고 두께는 약 2cm 입니다.
1년 동안의 글을 문고판 시리즈로 낸다면 2권까지 낼 수 있겠네요. 굔군님은 올 한해 이글루스에서 29,478번째로 게시물을 가장 많이 작성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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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글루결산





쓰고 보니 어느 새 2011년은 하루 남았네. 모두 Happy New Year~

낙랑군과 식민사학, 그리고 유사역사학 by 굔군

왜 그들은 한반도에 낙랑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가? by 보헤미오



이미 예전에 역밸의 모 네임드 블로거께서 한번 지적하신 적이 있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은 비공개로 돌려졌는지 그 포스팅을 찾을 수가 없다. 마침 보헤미오 님에 의해서 얘기가 다시 나왔고, 또 이에 대해 "없었으니까 인정 안하지."라는 상대측 진영의 간단명료한 공식(?) 답변까지 나왔으니, 그 글을 다시 쓴다는 차원에서 생각을 정리해 본다.




흔히 역사를 잘 모르는 일반인이나 초보 입문자들이 낙랑군이 한반도에 있었다는 얘기를 처음 들으면 충격과 공포(?), 그리고 거부감부터 느낄 것이다.




충격과 공포(...)는 어찌 보면 새로운 정보에 대한 지극히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는데,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이 땅이 한때 중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사실에서 근대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를 연상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여기에는 일제의 식민 통치의 희생자였던 과거의 기억도 일정 부분 작용하고 있다.

때문에 안타깝지만 일제의 식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는 국민 정서상, 이런 이야기들은 대 놓고 하기가 어렵다.
이 점을 의식해서인지 1980년대 국사 교과서 파동 이후, 지금은 교과서도 이러한 사실들은 가급적이면 거의 언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술되고 있다.
(1970년대 교과서에는 '낙랑군=평안도, 진번군=황해도, 임둔군=강원도, 현도군=함경도'라는 식으로 구체적인 위치까지 언급되어 있었다 카더라. 그 시절 국사 교과서를 보지 못했으니 확인할 길은 없지만.)



이러한 맹목적인 거부감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외국의 역사와 함께 통시적으로 살펴보는 객관적인 자세가 필요한데, 대부분의 역사에 무지한 일반인들은 이런 부분에서 매우 취약하다. 그 때문에 유사역사학의 선전선동에 더더욱 쉽게 빠져든다.


세계사적으로 보자면, 한반도에 낙랑군이 설치된 것은 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다. 전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배를 한번도 받아보지 않은 지역은 매우 드물다. 이것은 서유럽을 비롯한 지중해 연안 국가들이 모두 한때 로마 제국의 속주였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그런데 과연 영국이나 에스파냐, 포르투갈 사람들이 "로마 제국의 브리타니아, 히스파니아 속주는 영국인과 이베리아인들의 일부 지역만을 점령한 것이다. 진짜 영국인과 이베리아인들의 본토는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있었다. 현재까지 이 지역에서 영어와 에스파냐어, 포르투갈어가 계속 쓰이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들의 언어가 바로 라틴어에서 나왔다는 가장 기초적인 사실은 일단 차치하고서라도 전세계 사람들이 비웃을 일이다. 그런데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현재 한국에서는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 않은가?



서유럽 사람들은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는 것을 오히려 자신들이 문명화될 수 있었던 계기로 생각하며 자랑스러워한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카이사르의 정복으로부터 대영제국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며 찬양하기도 했다.
프랑스인들 역시 로마의 지배를 받았던 자신들의 역사를 <아스테릭스>라는 재미있는 문학 작품으로까지 승화시켰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물론 서유럽 국가들은 제국주의의 주체였지만, 반면에 우리는 제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차이가 있다.
여기에는 대중과 일부 역사가들의 잘못된 인식도 한몫 했겠지만, 아무래도 역시 식민 지배의 영향을 빼 놓을 수 없겠다.




일제가 '낙랑군 재한반도설'을 만들어냈다는 거야 당연히 아무 근거없는 유사역사학의 개소리에 불과하지만(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것은 이미 고구려인들도 인정했던 사실. 일제가 타임 리프를 해서 고구려인들까지 세뇌시켰다고 주장할 셈인가?), 일단 이것이 임나일본부설과 함께 일제의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것까지 부인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이 점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한국의 사학자들은 낙랑군의 존재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꺼리기 시작했고, 그 결과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또한 위당 정인보 등의 민족주의 계열에서는 재한반도설에 대한 반발로 유물 조작설을 주장하며 대항 논리를 개발했지만, 지나친 민족주의에 경도되어 근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현재 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런데 이 '떡밥'을 낼름 주워먹은 것이 바로 유사역사학 계열이다.

친일파들이 민족주의자인양 행세하기 위해 일본 극우파의 주장을 이름만 살짝 바꿔서 퍼뜨리고 다니기 시작한 것이 유사역사학의 실체라는 사실은 역밸러들이라면 다들 잘 알 것이다.
그런데 민족주의자를 자처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과거 민족주의 사학자들의 주장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유사역사가들에 의해 선택된 '떡밥'이 바로 정인보 등의 민족주의 계열에서 주장한 유물 조작설, 한사군 부존(不存)설 및 재요서-요동설이다. 자신들이 민족주의 학자들을 계승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지표로서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다 주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연구되었다는 점을 계속 부각시킨다.


이러한 사정을 자세히 모르는 일반인들이 봤을 때는, 유사역사학 계열이 민족주의적이며 여전히 학계를 장악한 주류 식민사학자들의 역사 왜곡에 맞서 저항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즉,
이들은 논쟁 자체를 계속 유지하려는 데에 목적이 있고, 이것이 잘 먹히기 때문에 이런 짓거리를 계속 하고 있는 것뿐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2007년경 환단고기와 규원사화에 대한 확실한 사망 선고(?)가 내려진 이후로도, 낙랑군 떡밥은 아직까지 유사역사학, 인터넷상에서 흔히 환빠라 불리는 세력들의 최후의 보루로서 남아있다. 말하자면 이 떡밥이 그들에게는 마지노선인 것이다. 이 떡밥마저 무너지면 자신들의 정체성까지 모조리 흔들리게 된다. 그렇기에 점점 입지가 좁아져 가는 상황에서 그들은 더욱 발악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밸에 낙랑군 얘기만 올라왔다 하면, 반박이라 불러주기에도 민망한 포스팅으로 상대방을 비방하기에만 바쁜 모 유저의 행태만 딱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래, 바로 너 말이야. 좀 있으면 이 글에 악플 달 비로그인.







너희들은 과연 민족주의 사학의 계승자로서, 식민사학에 맞서고 있는 것일까? 내가 보기에는 전혀 아닌데?
오히려 너희들이야말로 바로 일제 식민사학의 진정한 후계자들이지.


과연 단순히 없었으니까 인정 안 하는 걸까?
있었다는 증거가 이리도 널려 있는데?

솔직하게 까 놓고 한번 말해 보자.
한반도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기분 나쁘니까. 쪽팔리니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거 아냐?



그런데 그러한 감정, 이른바 "열등감(劣等感)"이야말로 바로 진정한 식민사학의 핵심이자 본질이거든.
실제로 이러한 역사 해석을 통해 식민지인들에게 열등감을 주입하는 것이 바로 일제 식민사학의 가장 큰 목적이었다.
식민사학은 기존의 사실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하는 것이지, 없는 사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식민사학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법은 매우 간단하다.
그러한 사실이 쪽팔리거나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열등감을 떨쳐 버리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식민사학의 열등감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는 것은 과연 누굴까?
누구긴 누구야. 바로 너희들이지.

너희들이 고조선과 고구려가 대륙을 호령하던 대제국이었다는 것을 자꾸 강조하는 것도, 그러한 의식의 저변에는 사실 역으로 그만큼 반도에 눌러앉은 고려와 조선의 역사에 대해서 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 아니겠어?
반도의 역사를 찌질하다고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대제국에 대한 과대망상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결국 아시아 대륙을 지배한 환국이라는 망상으로까지 발전하지.

어이쿠, 이건 바로 식민사학의 타율성론, 반도성론과 정확히 일치하는데?



하긴, 상대방을 식민빠라고 비난하는 너희들이야말로 일제 식민사학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기에 급급한 것은 그다지 놀라운 일도 아니지.
사실 원래 이 세상은 전부 모순투성이니까.




똑바로 알아둬라. 진정한 일제 식민사학의 추종자는 바로 너희들이다.










***추가 :
1970년대 국사 교과서의 한사군 관련 내용을 확인하였다. 현재 교과서의 서술과 비교해 보자.


한 군현의 변천
한은 고조선을 넘어뜨린 후 4군을 두어 식민지로 만들었다. 이 4군의 위치는 우리 민족의 이동로였던 교통로와 관계가 있다. 당시의 교통로는 요동 방면에서 통구에 이르러, 여기서 다시 한 갈래는 지금의 청천강과 대동강 유역으로 나오고, 한 갈래는 부전 고원을 넘어 원산만으로 진출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교통로의 분기점인 통구 지방에는 현도군을, 고조선의 옛 지역에는 낙랑군을, 그 남쪽 한강 이북 지역에는 진번군을, 그리고 원산만 일대에는 임둔군을 설치하였다.
(1976년 고등학교 국사)



고조선이 멸망하자 한은 고조선의 일부 지역에 군현을 설치하여 지배하고자 하였으나 토착민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쳤다. 그리하여 그 세력은 점차 약화되었고 결국 고구려의 공격을 받아 소멸되었다.
(2005년 7차 교육 과정 고등학교 국사)

영산강 세력과 이탈리아 반도의 그리스 식민지 by 굔군

전라남도 영산강 유역에서 일본식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 발견된다는 얘기를 듣고 이걸 떠올린 사람은 나뿐인가?
사실 처음 들었을 때는 나도 '임나일본부설이 현실화되는구나 @.@;;' 라는 충격에 휩싸였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로마가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기 이전, 이탈리아 반도 남부가 그리스인들이 건설한 식민지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북쪽으로는 쿠마이-네아폴리스(나폴리)로부터 남쪽으로는 시칠리아까지(시칠리아 섬은 그리스인과 카르타고인이 분점하고 있는 상태였음).

이 지역은 문화적으로도 이미 완벽한 그리스 문화권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기록상으로도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굳이 고고학까지 들먹일 필요도 없지만.
우리가 흔히 그리스인으로 알고 있는 피타고라스나 아르키메데스, 엠페도클레스 같은 유명한 수학자, 철학자들도 사실은 모두 그리스 본토가 아니라 이탈리아의 그리스 식민지에서 활동했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이탈리아 반도의 그리스계 도시들은 로마에 정복당하기 전에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그리스 본토보다 더 큰 번영을 이루고 있다 하여, '대(大) 그리스'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그리스어로는 메갈레 헬라스(Megale Hellas), 라틴어로는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 적어도 기원전 3세기 이전까지 이 지역은 확실히 고대 그리스 세계에 속해 있었다.




마그나 그라이키아는 이탈리아 반도에 선진적인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는 데에도 매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이 점은 한반도에 한(漢)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낙랑군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뭐, 이런 걸 말하려는 건 아니고...




실제로 이탈리아 반도 남부-발칸 반도는 한반도 서남부-일본 열도와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유사하다.







고고학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기 때문에 별로 할 말은 없지만,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에 의하면 전방후원분, 한국 학계 용어로는 장고분(長鼓墳)은 이미 일본 열도에서 처음 발생하여 그 진화 과정까지 분명하게 밝혀진 무덤 양식이라고 한다. 일본에서는 이미 3~4세기에 시원형 고분이 나타나 7세기까지 존속되며, 한국에서는 5세기 말~6세기 전반 무렵에 완성된 형태의 고분만 나타나고 있다. 일본 열도보다 축조 시기가 늦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분이 일본에서 유입된 것이라는 사실 자체는 부정하기 힘들 것 같다. 현재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점은 이 지역에서는 백제계 유물들도 5~6세기나 되어서야 나오기 시작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고고학적 성과에 힘입어 최근에는 학계에서도 근초고왕 때 마한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설이 크게 후퇴하고 서남부 지역에 아직 마한의 잔존 세력들이 백제의 속국 형태로 남아있었을 것이라는 시각이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자세히 아시는 분은 추가바람).


어쨌든 아직 백제의 영토가 아니었던 지역, 대체 뭐가 있었는지 알 수 없는 지역에서 '열도에서 유입된 것이 확실한' 무덤 양식이 발굴되고 있는 것이다. 뭔가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상상만으로도 두려운 그 발칙한 생각'을 현실화하는 것일지도...







이쯤에서 다시 마그나 그라이키아 얘기로 돌아가 보자.
앞서 서술한 바와 같이, 이탈리아 반도 남부에는 그리스계 식민도시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근거로 '이탈리아 반도가 그리스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왜냐 하면 당시 그리스는 통일된 국가가 아니었으니까.



당시 그리스인들이 지중해 전역에 건설한 식민도시(apoikia)들은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근대의 식민지(colony)와는 개념이 달랐다.
그리스인들의 식민 활동은 정복보다는 이주가 목적이었고, 그래서 주로 선주민이 없거나 있어도 세력이 매우 약한 지역이 대상이 되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가장 훌륭한 입지 조건을 갖춘 로마는 전혀 건드리지 않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또한 이렇게 그리스인들 이주하여 새로 건설된 도시들은 모국(母國)과는 전혀 상관없는 독립적인 폴리스였다. 마그나 그라이키아 역시 각각의 도시들이 독자적으로 활동했고, 그리스 본토의 지배를 받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렇다면 당시의 일본 열도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였을까?
그리고 과연 영산강 유역에 대해 일본 본토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영산강 세력을 근거로 일본이 한반도 서남부를 경영했다고 주장하려면, 이 지역이 일본 열도의 지배 하에 놓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본토와의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한다.

낙랑 지역의 경우는 토성 유적과 봉니, 인장, 호구 조사 목간 등의 발견을 통해 중국식 군현 지배 체제가 확고하게 이식되었음이 확인된다.
그럼 영산강 유역에서는? 과연 일본 본토와의 이러한 유기적인 '커넥션'이 있었음이 확인되는가?



아니, 그 전에 긴키(近畿) 지방의 야마토 정권은 과연 열도의 지방 세력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었는가? 이렇게 본국에 종속된 해외 식민지를 경영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전방후원분을 근거로 일본 열도의 영향력을 굳이 그렇게 확대 해석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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